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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하울링(2012)

by 김곧글 Kim Godgul 2012. 5. 14. 20:59




사실적인 형사물의 측면도 있고, 남자들의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열혈여성을 위로하는 측면도 있고, 인간에게 순수하게 순종적인 반려견을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채우는데 이용하는 것에 대한 경종의 메시지가 담겨있기도 하고, 사회고발적인 측면도 있고, 직장내에서 실적과 승진에 관한 남자들의 칙칙한 현실을 살펴보는 측면도 있다. 세부적으로 섬세하게 여러 가지를 다뤘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하나로 응축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마치 사공이 너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간 것 같은 이야기다.


감독의 의도였겠지만 전체적으로 건조하고 탁했는데 그것과 상반되는 재미적인 요소가 간간이 들어있지 않았다. 남녀 주인공 누군가에게 감정이입되었다고 해도 결말에 이르러 어떤 통괘한 맛을 느낄 수 없었다. 남녀 주인공이 그럭저럭 성장하고 성찰하는데 훌륭한 여정이었지만 그 굴곡이 완만했고 카타르시스가 적었고 보상이 약했다. 남주 조상길(송강호 분)이 그렇게 원하는 승진을 했지만 통괘하지 않고 꽤림직했다. 비록 사실적인 형사물을 만들려는 의도에서 그랬겠지만, 조상길의 공적이 관객에게 감동을 주지는 못했을 뿐만아니라 오히려 불만족스러웠다. 마지막에 악인의 우두머리를 살려줬으니 말이다. 여주 차은영(이나영 분)은 소위 조직에서는 알아주지 않아도 언젠가 세상의 누군가는 알아주리라 믿고 진실되게 소신대로 살아가는 보편적인 영웅의 이미지인데 그런 것에 관한 후반부의 장면이 부족해서 감동할 기회가 없었다.


그건 그렇고, 자타가 공인하는 충무로 최고 배우 송강호는 이전 작 '푸른소금'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도 기존의 배역과는 다른 인물을 연기했다.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도 어느 덧 중년 후반이고 그렇다고 아직은 배우 안성기처럼 무게있는 조연을 하기에는 아직 여유가 있고, 이미지 변신을 꾀하려고 시도했는데 연기력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관객들이 썩 반기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 이유는 뭘까?


필자의 생각에는 아마도, 대부분의 국내 보통 관객들이 배우 송강호를 좋아하는 이유가 자신들을 대변하는 인물을 연기할 때 감정이입을 하는데 최근작 '푸른소금'과 이번 영화에서 그의 인물은 냉철하고 현실적인 사고를 하는 점잖고 실력있고 똑똑한 중년남자였고 이것은 이전에 그의 대표적인 송강호표 배역 이미지 - 다소 어리숙하지만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계산적이지 않은 (계산적이더라도 지 꾀에 지가 당하는) 중년남자 - 와는 이질감이 느껴져서 그의 최근 인물에 빠져들지 못하는 것 같다.


다양한 인물상을 연기해서 관객이 좋아하는 배우가 있고, 반면에 어떤 느낌의 인물을 연기했을때만 관객이 좋아하는 배우가 있는 것 같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일 것이다. 그가 주연한 수많은 영화가 있지만 그 인물들은 대동소이하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관객은 여전히 좋아하고, 싫어하는 관객도 적지 않다. 어쨌튼 그는 영화계의 중심 대양을 항해하고 있다.


아마도 극장을 찾는 수많은 국내 관객들 중에 심리적으로 불안한 중산층의 가장, 사장보다는 봉급쟁이, 고생을 밥먹듯이 하는 소규모 자영업자, 해도 해도 썩 잘되는 일이 없는 소시민, 사회적인 의사소통이 매끄럽지 못해서 마음고생하는 도시 잉여인, 일시적으로 아이처럼 순수하게 모험하고 싶은 마음만은 피터팬인 키덜트 현대인... 등등의 관객이 송강호표 인물을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었는데 최근 연기 변신에서는 그것을 할 수 없어서 그의 주연 영화에 매료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세월이 흘러 재평가될 수도 있는 측면들이 있다. 세상살이가 많이 달라진 후에 말이다. 다만 현시점에서 빠르고 간결하고 직관적인 서사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맞지 않았다. 특히 후반부에 늑대개가 도주(마지막 타겟을 쫓아감)하고 남녀 주인공과 형사들이 따라가는 장면에서 별다른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긴지... 졸음이 쏟아질 정도였다. 코엑스 같은 도심지 또는 재래시장에서 추격전이 벌어졌다면 (촬영하기도 힘들고 돈도 많이 들었겠지만) 지금처럼 지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 자체가 못 만들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이야기의 관점에서 현대 국내 대중 관객의 사고방식과 취향에 다소 동떨어져있는 것 같다.



2012년 5월 14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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