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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역린(逆鱗, The Fatal Encounter, 2014)

by 김곧글 Kim Godgul 2014. 6. 12. 18:27




기존의 한국적인 사극과 사뭇 다른 느낌이 장점으로 작용한 것도 있고 단점으로 작용한 것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정교하고 걸죽한 시각적 완성도로 요즘의 젊은 관객층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확실히 비주얼도 좋고 내용도 촘촘하고 인물들도 다양하고 배우들 연기도 훌륭하고 전체적으로 몰입되어서 감상할 수 있었는데 뭔가 하나 석연치않은 점이 느껴지는 것을 간과할 수 없었다. 마치 좋은 원단으로 잘 만든 의상이고 내 사이즈에 딱 맞는데 막상 구입해서 입고 활동했더니 그 사이에 어떤 부위에 살이 붙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느낌이 드는 그런 것이다. 분명히 한국의 역사에 기반한 사극인데 어딘지 모르게 서구적인 판타지 요소가 들어가는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그것이 딱 내 입맛에 즉각적으로 달라붙지는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일단 젊은 조선시대 왕이 여가로서가 아니라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서 매우 침착하게 (마치 여러 번 경험한 전투처럼) 웬만한 저격수를 능가하는 명사수의 역할을 하는 것이 그랬고, 당대 최고 자객에 맞서 거의 비등하게 칼싸움을 하는 것이 다소 이질적이고 서구적인 판타지 느낌이 들었다.  

  


첩자이며 동시에 자객으로 키우는 비밀조직의 책임자인 광백(조재현 분)이라는 인물도 보통 한국 사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악인이 아니고 서구적인 느낌의 악인이다. 한국 영화의 조폭 장르에서 두목들을 보면 미국의 마피아나 갱들의 보스와는 어딘지 모르게 다른 뭔가가 있고 그것 때문에 한국관객들이 한국적인 조폭을 감지하며 빠져든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영화의 광백은 한국의 조폭 장르에서 두목들의 최소한의 인간적인 특징이 없었다는 점에서 서구적인 판타지 느낌이 들었다고 볼 수 있다.     

  


정순황후(한지민 분)라는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감독이 시각적으로 각별히 노력한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중에 어린 복빙(유은미 분)이 발톱을 다듬어주는 장면에서 확실히 서구적인 판타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 모습에서 똑같지는 않지만 유명한 서양 판타지 일러스트레이션의 한 장면(판타지 여왕이 자신의 권위를 자랑하기 위해서 자신은 편하게 왕좌에 앉아있고 여러 시녀들이 자신의 발밑에서 거의 비키니 차림으로 술과 다과를 먹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그런 비슷한 장면을 이전까지 한국 사극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다. 만약 한국적인 장면이라면 그냥 자신의 방에서 매우 편하게 (비스듬히) 앉아 발톱을 다듬게 했을 것이다. 굳이 어린 시녀에서 발톱을 다듬게 하는 모습을 다른 궁녀들에게 보여주며 자신의 권위 또는 위상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장면에서 어린 복빙이 중요한 얘기를 듣게 되는 중요한 장면이면서 동시에 정순황후의 권력에 대한 과시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잔혹한 실력파 자객 을수(조정석 분)의 경우엔 상영시간이 한정된 영화에서 짧은 시간내에 입체적인 인물성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일부는 성공했고 일부는 성공적이지 못 했다. 잔혹한 실력파 자객이 되기까지는 납득이 되었는데, 젓가락 두 개로 눈 깜짝할 사이에 대상을 암살할 수 있는 자객이 우연히 본 강월혜(정은채 분)과 매우 순수한 사랑을 하고 얼마나 만나봤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쳐 사랑을 지키려고 결단하는 모습이 다소 단순하거나 만화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인물로 보였다. 레옹 같은 장인 킬러의 순수하거나 단순한 사랑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관객이 납득할 수 있는 우여곡절이 있었고 장인 킬러의 순수함을 받아들을 수 있는 장면들의 나열이 있었기에 관객이 공감할 수 있었다. 

  


강월혜도 자신과 같은 방을 썼던 복빙을 구하고 싶었고 당시 신하들 정치권 세계에 불만을 품은 것까지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먹여주고 키워준 새아버지가 모욕적인 발언을 하고 자신이 지켜주려고 했던 어린 아이를 지켜주지 않는다고 해서 새아버지를 포함 수많은 사람들이 낙엽처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할 수도 있는 결단을 어렵지 않게 내렸다는 점도, 게다가 그 이전까지 강월혜라는 인물은 을수의 엔드리스 러브 연인 정도였지 그렇게까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일 줄은 예상치 못 했는데 다소 쌩뚱맞은 이야기 전환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달리 생각하면, 단지 새아버지가 첩자로 써먹으려고 키운 다른 핏줄의 딸이 구해주고 싶었던 어린 여자 아이를 살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편 쪽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왕이 역적 무리의 뒤통수를 치고 섬멸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것은 영화의 큰 주제나 메시지, 매우 성실히 철저하게 준비하고 노력하면 반드시 큰 뜻을 이룰 수 있다,와 단도직입적으로 부합되지는 않아 보인다(어느 정도 관련이 있기는 하다).   



그 외에도 여러 장면들에서 서구적인 판타지, 로마시대물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괜히 트집잡는 것 같은 느낌도 있고 생략하기로 한다. 달리 생각하면 이런 것들이 젊은층에게는 신선한 장점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좋게 생각하면 기존의 익숙함에서 벗어난 색다른 시도로 사극을 만든 것이다. 치밀하게 촘촘히 연결된 내용은 좋았지만 어느 부분은 이 부분의 국사를 잘 모른다면 (대부분은 알겠지만) 영화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 했을 관객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다소 핵심을 꼬집어 심플하게 표현하지 못 했다는 얘기다). 매우 특징이 강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해서 풍요로운 느낌이 들었지만 몇몇은 충분히 몰입시켜줄 상영시간이 없어서인지 전형적이게만 보인 점은 옥의 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것이 중요하다, 이 영화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지금까지 국내 제작 사극 중에서는 아마도 가장 풍부하고 걸죽하고 뛰어난 비주얼이다. 물론 관객들이 좋아한 남녀 주인공들의 뛰어난 비주얼도 포함해서 말이다. 액션이 너무 과하고 많지 않았냐,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르를 한가지에 속박할 수 없다는 점도 (일종의 액션과 드라마를 퓨전한 듯) 국내관객에게 장점으로 작용한 것 같다. 전체적으로 큰 의미에서의 비주얼이 뛰어났던 점이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볼 수 있. 인물의 설정이나 내용에서는 약간의 아쉬움, 별로 치자면 4개 정도의 완성도라고 생각된다.

  

  

2014년 6월 12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