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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바람이 분다 (風立ちぬ, The Wind Rises, 2013)

by 김곧글 Kim Godgul 2014. 6. 29. 17:38


  

1차 세계 대전이 참호에서 기관총의 전쟁이라고 한다면, 2차 세계 대전은 탱크와 전투기의 전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전투기의 전략적 활용은 전세의 향방을 정하는데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일본이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면서 사용한 일본에서 제작된 주력 전투기 일명 '제로기(총 1만 964대 생산됨)'을 설계한 공학자가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 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제작된 2차 세계 대전에 관한 다큐멘터리 시리즈 총 6부작 중에 4부를 보면 지로가 설계한 제로기에 관하여 짧게 언급되는데, 속도, 기동성, 사거리 면에서 연합군의 전투기를 능가했다고 소개한다. 즉 지로는 세계사에서도 인정받는 천재 전투기 설계자인 셈이다. 물론 영화에서도 표현되었듯이 당시 이 분야 최고였고 동맹국이었던 독일에 방문해서 얻은 전문지식도 많은 도움이 되었을테지만 말이다. 

  

누가 뭐래도 지로는 일본의 제국주의를 지원한 쪽이고 전범의 일행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가 개인적으로는 단지 뛰어난 성능의 항공기를 설계하고 싶은 순수한 열정만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설계한 전투기는 일본이 참전한 2차 세계 대전을 매우 요긴하게 도와준 결과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일단 이 애니메이션은 그런 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 필리핀, 홍콩... 등등 수십년 전에 일본에게 침략당했던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기분이 나쁜 것이 당연하겠지만 일단 그것을 잠시 접어두고 단지 비행기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정말 뛰어난 비행기를 만들고자 일생을 바친 어떤 비행기 설계자의 전기를 본다고 생각하고 감상한다면 인상적인 감동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독일 나치의 '사막의 여우' 롬멜 장군을 연합군 측에서도 비록 적이지만 훌륭한 군인으로 인정했던 것처럼 비록 일본의 제국주의를 지원하는 전투기를 설계한 전범에 속하지만 그의 공학자로서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 전혀 살펴볼 가치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의 전투기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의 오직 뛰어난 비행기를 설계하고자하는 일편단심에 인생을 바친 이야기이다. 직업이 책상에 앉아 밤새도록 설계하는 업무가 주업무이기 때문에 극적인 이야기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이탈리아의 비행기 제작자 '카프로 백작'의 전문서적을 탐독하고 그와 환상 속에서 대화하고 꿈꾸고 희망을 키워가는 장면이 애니메이션적인 기법으로 인상적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관객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신경썼다. 대지진에 관한 애니메이션적인 표현력도 뛰어났고, 지로의 사랑 이야기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의 인생 목표인 당대 최고의 성능을 지닌 비행기를 만들어내기까지의 우여곡절을 극복하는 과정을 잔잔한 감동을 주면서 보여준다. 명작까지는 아닐 수 있어도 적어도 수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가 그리는 주인공 지로라는 인물은 아마도 최근의 한국 드라마, 영화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 인물형이다. 쉽게 말해서, 남들이 뭐라하건 전혀 개의치않고 고지식하게 자신의 목표만을 위해서 차근차근 조용히 수십년의 인생을 헌신하는 인물형이다. 이 블로그에서 감상글을 적었던 일본 영화 '행복한 사전(배를 엮다 (舟を編む, The Great Passage, 2013))'의 주인공 '마지메'와 비슷한 인물형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일본 영화에서도 이런 인물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보편적인 대중예술의 이야기의 주인공 모습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에서는 그래도 한국 보다는 좀더 등장하는 편일 것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흥행한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개 임기웅변이 뛰어나고 역동적이고 활동적이고 감성의 진폭이 큰 편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지로는 대중영화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주인공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해서 그것도 감동을 느끼면서 감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잘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과거 역사에 관한 불편한 심정을 잠시 내려놓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어떤 인간이 자신의 인생의 꿈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수십년 동안의 인생을 바쳐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갔는지에 관하여 주목하면서 감상한다면 충분히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어떤이는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2014년 6월 29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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