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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비긴 어게인 (Begin Again, 2013)

by 김곧글 Kim Godgul 2014. 11. 13. 21:15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는 작품은 없다. 이 영화도 별로 재미없었다는 사람도 주변에서 본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재밌었고 감동있게 봤다. 다만, 이 영화가 한국에서 매우 큰 인기를 끌었다는 점에는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없지 않다. 이 영화가 그렇게 한국 관객이 좋아할만한 영화였던가? 어떤 점이... 뭐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아마도 이 영화를 좋아한 관객은 절반 이상 아니 70% 이상이 여자 관객일 것이다. 한국 남자 관객들이 대개 열광하는 외국영화는 액션 장르와 더불어 (여성 관객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요즘 한창 잘 달리고 있는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일 것이다. 그러다면 여성 관객들이 이 영화에 왜 그렇게 빠져들었을까?  

  

내 생각에, 주인공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분)'가 한국 여성 관객이 자신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며 감정이입시키기 좋은 캐릭터였다. 영화속에서 떠오를 수 있는 잠재적 재능을 지닌 스타이면서 스타일이 멋진 남자친구 '데이브(애덤 리바인 분)'가 있고, 동남아시아 어떤 도시도 멋지지만 그래도 한번 꼭 가보고 싶은 전 세계 문화의 용광로라고 볼 수 있는 '뉴욕(New York City)'를 방문하고, 그레타 자신은 죽도록 헝그리 정신으로 노력하며 뉴욕에서 살아갈 걱정을 할 필요는 없는 상황이고, 비록 남자친구에게 차였지만 정말 마음 좋은 친구 '스티브'가 길거리에서 이슬을 맞으며 잠자게 될 최악의 상황을 구해주고, 그 친구를 따라 라이브클럽에 가서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못내 귀찮은 듯이 불렀을 뿐인데 함께 작업하자며 음악 프로듀서 '댄(마크 러팔로 분)'이 달라붙고 그는 마치 통속 로맨틱 소설 속의 '키다리 아저씨' 처럼 그녀를 도와주며 마치 동화처럼 길거리에서 자신의 음악을 라이브 음반으로 제작해주고... 이런 모든 상황들이 현대 한국 여성 관객이 뉴욕에 가서 한번 쯤 자신에게 일어났으면 상상하는 꿈 같은 상상이기 때문에 이 영화가 흥행한 것 같다. 여성 관객은 이 영화를 감상하며 자신이 꿈꾸는 직업에 맞게 (꼭 음악 관련 직업이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뉴욕에서 짜릿한 동화를 꿈꿀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만족했을 것 같다.


한편, 이것을 남자 관객이 공감하며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이렇다. 한국에서 존재감이 없는 실업팀 야구 선수가 경기 중에 부상을 당해서 휴가를 내고 머리를 식힐 겸 여자친구와 뉴욕으로 여행 왔는데, 여자친구는 괜찮은 직장에 취직했는데 거기서 눈 맞은 놈이 생겨서 이별을 선언한다. 야구 선수는 허망한 심정으로 뉴욕의 뒷골목 야구장에서 우연히 공을 던지고 타격을 했는데 메이저리그 스카우터가 자신이 속한 팀의 마이너리그에서 뛰면서 실력을 쌓으면서 (급여도 주겠다면서) 메이저리그를 생각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는 경우이다.

  


물론, 남자 관객 입장에서도 이 영화의 남주인공 '댄'의 인물에 감정이입하기에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현재는 이혼 또는 별거하며 허름한 골방에서 꼬지지하게 살아가고 있는 꼴이지만, 과거의 화려한 성공이라는 후광이 있고 (완전히 무능력한 사람은 아니다 실력은 있는데 운이 안 따라줬다는 의미), 담배와 술을 마음껏 흡수할 수 있고, 비록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마치 스티브 잡스처럼 쫓겨났지만, 자신의 실력을 믿고 열정을 가지고 재기하려고 노력하는 배 나온 '댄'이라는 인물은 보통 중년 남자들이 자신을 이상화하여 감정이입하기 좋은 인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레타처럼 예쁘고 노래 잘 하고 생기발랄한 젊은 여자와 함께 열정을 갖고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 마냥 행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야기 전개로 봤을 때, 단지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지는 않았다. 일종의 도치법 같은 것을 사용했는데 그런 규칙이 따로 있다기 보다는 소설이나 만화에서 자연스럽게 어떤 상황에서 짧은 이전 시간의 과거를 설명하는 것처럼 영상을 펼쳐보였다. 그래도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만큼 복잡하지는 않다. 다만,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이 감상할 때는 약간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웬만큼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에게는 이런 진행이 신선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감독의 입장에서도 이 이야기가 그렇게 파격적이거나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지루함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런 연출을 시도했을 것이다. 

  

한편,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다 착하다. 이야기도 착하고, 그래서 마치 '현대도시동화' 장르가 있다면 이 영화가 딱 일 것이다. 댄이 딸과 함께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도망쳤는데 주인은 한 주먹 날려주고 술값으로 퉁쳐준다. 멱살을 잡고 '이놈 저놈 경찰서에 끌려가서 콩밥을 먹어봐야 정신차린다느니' 그러지 않는다. 게다가 악수까지 하고 보내준다. 댄도 딸이 보는 앞에서 애써 태연한 적 하며 농담까지 날려준다. 음반 회사 사장도 아주 능글능글하게 행동한다. 비록 현실적으로 매우 냉정하고 비인간적이지만 그것을 말과 행동으로 할 때는 정말 동화처럼 매끄럽고 착하게 한다. 영화의 끝부분에 댄을 다시 해고할 때도 역시 그렇다. 댄이 과거에 성공시켜줬던 뚱뚱한 랩퍼도 정말 동화 속의 인물처럼 착하고 의리가 있다. 어린이 발레 학원에서 피아노를 치다가 댄이 명함을 건네자 곧바로 퇴직하고 달려오는 장면도 코믹하고 재밌었다. 그레타가 단지 데이브가 새로 만들었다며 들려준 음악만을 듣고 새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을 알고 뺨따구를 날리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댄이 처음으로 그레타의 음악을 라이브바에서 들었을 때 상상으로 피아노를 치고 첼로를 연주하는 장면도 매우 좋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면서 사운드트렉 중에서 가장 좋았던 노래는 'Lost Stars'가 아니라 루프탑에서 라이브연주를 하는 'Tell Me If You Wanna Go Home'이다. 가사보다는 음악, 멜로디, 뉴욕 야경을 배경으로 옥상에서 라이브하는 그림 같은 분위기, 곡의 끝부분에 기타 톤과 멜로디가 좋았다. 이런 기타 톤은 90년대 얼터너티브 밴드들이 많이 사용한 것 같다.

  

Keira Knightley - Tell Me If You Wanna Go Home (Begin Again Movie CLIP)

  

이 영화를 보면 뉴욕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진다. 아직 뉴욕을 가본 적이 없는데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쩌면 뉴욕은 수많은 지구촌 사람들이 죽기 전에 한 번 가봐야할 도시 목록 중에 상위에 랭크되어 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최근에 나온 뉴욕 관련 팝송으로 테일러 스위프트의 'Welcome To New York'이 있는데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미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뉴욕 하면 바로 떠오르는 그 유명한 "뉴욕~ 뉴욕~" 하는 노래 말고 이 노래가 먼저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Taylor Swift: "Welcome To New York" - David Letterman



2014년 11월 13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