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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나의 독재자 (My Dictator, 2014)

by 김곧글 Kim Godgul 2014. 11. 18. 20:41



나름 기획을 철저히 하고 정성을 쏟아부어서 제작한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이 영화가 여러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데 실패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데, 첫째는 인물과 이야기가 요즘 시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었고, 둘째는 이야기를 영상으로 펼쳐서 보여주는 그 형식미가 다소 구식이여서 지루함을 증폭시켰다. 추가로,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다소 모호했고 그 모호함이 관객들로 하여금 재미 또는 감동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혹시 이런 윤곽인가? 아니면 저런 흐름인가? 아니면 그런 분위기인가? 라는 생각이 들며 어느새 영화가 끝났다.  

  


영화 홍보물에서 배우들이 나와서 영화에 대한 짧은 소개를 했을 때, 나름 재밌어 보였다. 그러나 그때 얼핏 떠오른 이야기와 많이 달랐다. 내 생각으로는 '태식(박해일 분)'의 아버지 '성근(설경구 분)'이 자신을 김일성으로 착각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충돌하고, 해프닝이 발생하고, 가족들이 고생하고, 좋은 일도 생기고,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하고, 재미와 감동이 있고, 이런 이야기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김일성으로 착각하는 아버지의 삶도 영화 길이의 절반 밖에 안되고 그것마저 매우 어둡고 무겁고 가라앉은 이야기였다. 제목에서 풍겨지는 것처럼 아버지가 가정이나 직장에서 실제로 독재자처럼 행동해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그냥 국가에 의한 정신적인 충격으로 정신이상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불쌍해 보였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어떤 독재자 아버지인지 보자. 재밌겠다. 이거였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까, 불상한 치매환자 같은 아버지였다. 그래서 이 영화가 재미없었는지도 모른다. 

  


전달하려는 메시지적으로 보면, 1970년대에 국가가 어떻게 소시민 개인의 인권을 말살하고 그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었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초반을 길게 보여준 것은 잘못되었다. 게다가 그 부분이 재미있는 것도 아니였다. 후반부에는 성근의 예술혼을 높이 치켜세워주는 메시지인 것 같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그렇다면 성근에게 어느 정도 보상을 해줘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단지, 아들 태식이 아버지를 다르게 보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는 감동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성근을 통해서 국가의 인권침해를 고발하려고 하는 것인지,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고차원적으로 고진감래하는 예술혼을 설파하려는 것인지 모호했고, 둘 다 였다고 한다면 그 비빔밥이 제대로 요리되지 못 했다. 

  

  

이 영화의 형식미는 즉 영상의 진행, 이야기의 장면, 단락의 길이와 편집은 정말 고지식했다 또는 고리타분했다. 생략할 것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어떤 장면들은 압축하고, 어떤 장면은 충분히 천천히 보여주고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을 현시대 관객들이 몰입할만큼 제대로 만들지 못 했다. 전체적인 이야기 말고도 대개 장면들을 질질 끌어서 지루했다. 또한 식상한 형태의 감동을 억지로 끄집어내려고 했다.   

  

  

정말 허탈하고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장면은 거의 끝부분에 성근이 마침내 대통령 앞에 가서 자신의 연기력을 혼신의 힘을 바쳐 펼쳐보였는데 대통령의 까칠한 반응과 오계장(윤제문 분)의 조롱을 담은 비난 섞인 말을 인상적으로 내뱉는 장면이다. 대통령은 다소 허탈하지만 준비한 수많은 사람들과 자신의 체통을 위해서라도 내공을 발휘하여 껄껄 웃으면서 수고했다고 말하고 간단한 오찬과 상패를 주는 장면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오계장이 그렇게까지 끝까지 성근을 비천하게 깔아보는 것 보다는 너무 그쪽 정치 세계를 모르고 오직 연기에만 몰뚜하며 평생을 살아온 소시민에 대한 그냥 신경 안 쓰는 행동, 조선시대 버전으로 말하면 그래 떡이나 하나 더 먹고 궁밖에 나가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누설하지나 마라, 라는 심정으로 어차피 정부의 돈이니까 수고료를 넉넉히 하사해서 성근과 그의 아들 태식 그리고 태식의 부인과 그녀의 배속에 있는 아기에게 약간의 행복한 보상을 주었다면 이 영화의 끝이 부드럽고 따뜻하게 끝나서 관객의 마음이 좀더 편안했을 것이다. 요즘시대에 통하는 대중영화의 관점에서, 소박한 소시민 아버지의 예상치 못하게 불행해진 삶을 유머와 아이러니와 뜻밖의 행운으로 승화시켜주지 못한 것이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제공하지 못한 가장 큰 실수다.

  

  

아무튼, 영화를 제작하는데 여러 가지 세심한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히 보였지만 이야기 자체가 그리고 영상을 펼쳐주는 요리 자체가 요즘 시대 관객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2014년 11월 18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