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칼럼, 단편68

[시] 라면과 우동 라면과 우동 라면과 우동의 빅 게임, 얼큰한 매콤과 시원한 담백의 박빙어느 편이 이기든, 내 공복은 너의 것 달랑 한 봉지만 끓이면 뭔가 허전해글타구 1.5개 끓이면 밥통이 늘어나밥 한 주걱 말아먹는 건 치명적인 칼로리 과다섭취이건 어때, 라면이라면 계란 퐁당, 우동이라면 어묵 한 장잊지 말아, 약방의 감초, 파를 넣어야 국물맛이 청초해. 김치가 떨어졌네, 꿩 대신 닭, 단무지 사러 마트에 갔더니노란 몸뚱이라 금값인건가? 김밥용은 좀 싸구나!나무 젓가락처럼 늘씬한 단무지, 입에 들어가면 다 똑같지 뭐.온몸을 깨무는 맛, 짭조름한 맛, 녹으면서 들어가 내 몸과 하나가 되는 세상의 섭리 라면 국물에 빠져 죽는 악몽, 치명적인 매력우동 국물에 빠져 죽는 가위, 거부할 수 없는 유혹면발에 배 터져 죽는 지옥, .. 2013. 4. 1. 12:40
가을비 카페트 가을비 카페트 가을비가 내려와 노란색, 빨간색 카페트를 만들고 사람들은 그 위를 걸으며 세월의 뒤안길을 되새김질 해본다. 차분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어깨의 수평을 맞춰보고, 시선은 전방으로 향하고, 내일을 향해 걷는다. 2012년 10월 4일 김곧글(Kim Godgul) Nutshell - Alice In Chains 2012. 10. 4. 03:17
(시) 완전한 아이스크림 (the Perfect Ice Cream) 완전한 아이스크림 글. 김곧글 창문을 열 수 없어 못 들어가면 미쳐버릴 것 같아 모기로 변신하는 주문을 외웠다 간신히 구멍으로 비집고 들어가 침대에 누워있는 너의 하얀 아이스크림 난 아직 모기, 되돌리는 주문이 뭐였더라 참을 수 없어 지금 당장 너의 쇄골과 허벅지와 입술을 깨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wanna be the perfect one 너밖에 안 보여 gonna be the infinite world 시간이 우리를 찾지 못하는 곳 into the perfect world 떡볶이와 순대, 너와 나 서로 먹여주고 우리 이제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가자 함박눈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깊은 밤은 꽁꽁 얼어붙고 가로등 아래서 니 손과 내 손을 포개면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몇 달 전에 깨물었던 너의 붉은 입술 달빛.. 2011. 10. 20. 10:32
(시) 오늘용(The Today dragon) 오늘용(The Today dragon) 어김없이 오늘이구나 마냥 어제였더라면 라고 바랬던 때가 오늘 같은데 벌써 또 다른 오늘 내일이라니 오늘도 달려야지 세찬 바람을 가르고 오늘도 즐거운 하루, 오늘용을 타고 지평선 끝을 찍고 구름 뚫고 저 높이 시간이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하는 경계선 너머 저 멀리 Riding the Today dragon Fly to the end of time 별이 총총한 어느 깊은 밤, 우리가 지세운 그 밤의 새벽 내게 날아온 오늘용, 니가 타고 왔지 내게 날아온 내일용, 오늘용이 데려 왔지 오늘용, 내일용을 타고 칼바람을 가르고 오늘도 내일도 행복한 하루 찬란하게 빛나는 오늘과 내일 Riding the Tomorrow dragon Climb upon the sky 달려라 날아라 .. 2011. 5. 29. 17:04
(시) 숯 숯 어둠이 빛에게 달려와 환골탈태하기 직전에 세속의 껍질을 벗어버린다. 냉기와 온기가 맞부딪쳐 수증기를 만들고 그 속에서 세상이 태어난다. 티끌이 태양의 주변을 떠돌더라도 언젠가 중력의 포로로 붙잡힐 필연적인 운명 따라서 곧 티끌은 태양 속으로 빨려들어가 하나가 된다. 태양의 빛과 하나가 되어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티끌은 성장해서 마침내 거대한 땅덩이 지구가 되고 따라서 곧 지구는 태양에게 삼켜진다. 지구의 열정, 태양의 눈부심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겨 하나로 합쳐지기 일보 직전에 지구는 완전한 숯덩이가 된다. 숯이 되리라. 새까맣게 타버려 완전한 숯이 되리라. 2010년 7월 31일 김곧글 2010. 7. 31. 17:47
(시) 모기의 명상 모기의 명상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한 여름이 일생이라고 불평하지 않는다 왜 하필 흡혈 식성이어야 했냐고 불평하지 않는다 잠자리와 나비처럼 사랑 받지 못한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 따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생각이라 여기고 에엥 하는 날개짓으로 위풍당당하게 모기의 존재감을 세상에 공표하며 오늘도 어김 없이 어느 창문으로 향한다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산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에 이미 모기로 태어난 이상 모기답게 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에... 모기로서의 충실한 삶을 전능하신 신께서 내게 원했다 별도 달도 해도, 산도 바다도 짐승도 그리고 인간도 다 그런 맥락으로 살고 있다 내가 모기여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모기가 나여서 행복한 것이다 신이 나를 모기로 만들어서 불만인 것.. 2010. 7. 9. 20:40
(시) 3월의 영험한 눈내림 3월의 영험한 눈내림 3월에도 눈이 내릴 수 있었구나 2월의 눈은 기억의 저편이라서 흐릿하지만 3월의 눈은 아애 전무해서 백지상태다 실제로 그 진위야 어딘가 기록되어 있겠지만 예전에는 눈이 내리던지 말던지 신경쓰지 않다가 최근 몇 년 전부터 관심을 가졌기 때문인지 오늘처럼 3월의 하늘을 꽉 채운 눈내림은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는 처음이다. 나는 소원을 빌었다 밤하늘에 유성이 떨어질 때 그렇듯이 산바위의 범상치 않은 형상이 그렇듯이 희소성이 높은 자연물에는 신령한 기운이 들어 있기 마련이다 우주의 성모 여신이 어느 날 문뜩 자신의 세상을 둘러보다가 찬연한 기쁨으로 충만하여 온몸에서 빛이 발산되고 그 빛은 인간 세상의 자연물에 신령으로 배어들더니 한낮 미물에 지나지 않는 인간의 삶에 소중한 행운을 안겨 준다.. 2010. 3. 9. 21:37
(시) 이른 나비 이른 나비 아직 겨울이 버티고 있어 깊은 그늘에선 눈이 숨쉬고 있건만 2월 하순 어느 날, 봄처럼 포근했다. 길을 걸었다. 동네 한 바퀴. 멀리 돌았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펄럭펄럭 하는 것이 내 앞을 가로질렀다. 나비였다. 아직 무엇하나 파릇한 이파리조차 못 본 것 같은데 꽤 일찍 태어났구나 녀석은 바람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길을 걸었다. 동네 한 바퀴. 반시간 이상 걸었다.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펄럭펄럭 하는 것이 또 내 앞을 지나갔다. 나비였다. 같은 무늬였다. 밤색 계통. 반시간 전에 봤던 녀석이었을까? 걸어서는 먼 거리지만 대각선 방향으로 하늘을 가로질렀다면 전혀 가능성이 없는 얘기도 아니다. 그러나 나비의 날갯짓은 내 감수성을 후려쳤다. 서로 다른 나비다.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어 한 연인이다.. 2010. 2. 24. 22:06
(시) 열기 열기 초저녁까지 창백했던 가로등이 밀도있게 지상으로 행군하는 눈발을 붉은 혀로 녹이는 밤 위엄있는 동장군의 엄동설한 손놀림이 창문을 호위하던 밤이슬을 아이스크림으로 얼리는데 아무도 닿지 않은 담벼락에 쌓인 눈을 밟고 올라가 잠그지 않은 그녀의 창문을 조심스럽게 열면 눈을 부비며 잠에서 깨어난 그녀의 자태에서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가 물밀듯이 밀려온다. 나는 실 한올도 걸치지 않고 창문을 넘는다. 2010년 01년 07일 김곧글 2010. 1. 7. 18:35
(시) 영원의 호흡 영원의 호흡 수많은 혼돈은 늘쌍 자신의 주변을 맴돈다. 일편의 질서는 자신의 깊은 내면에서 뿜어져나오는 한줄기 빛이다. 혼돈은 밖으로 팽창하려는 속성이 있고 질서는 안으로 오므라들려는 속성이 있다. 날숨에 혼돈만을 실어야 하고 들숨에 질서만을 실어야 하거늘 스스로의 능력만으로는 영혼의 호흡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다. 자신의 심연으로 아득히 하강해서 자신의 인지를 넘어 춤추는 여신의 입술에 키스하면 자신을 둘러싼 온갖 혼돈과 질서는 무아지경에 빠지고 비로소 진정한 영혼의 호흡을 할 수 있게 되고 마침내 영혼과 우주와 여신이 하나됨에 이르고 영혼의 호흡은 영원의 호흡이 된다. 2010 01월 05일 김곧글 2010. 1. 5. 20:59
(시) 극미와 극대 극미와 극대 만물을 극한으로 쪼개면 언젠가는 경계선을 만난다. 그 경계선 너머의 세계는 보통 극미 세계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서로 다른 다양한 물리 이론이 찰나적으로 생로병사하는 세계 서로 다른 수많은 물리 이론을 적용해도 통하는 세계 경계선을 넘어 펼쳐진 극미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경계선 이내의 극미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 아무런 의미도 없을 수 있고 모든 의미를 구분할 수 없을 수 있고 수학과 물리로 간단히 이해될 수 없는 세계 인간에 한하여 경계선 이내의 극미세계를 들여다보고 연구하는 것만이 우주를 이해하고 이용하는데 가치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인간의 과학은 아직 그 경계선조차 도달하지 못 했다. 우리 우주를 포함하는 또 다른 우주, 그 우주를 포함하는 또 다른 우주,... 그.. 2009. 6. 3. 20:42
(시) 뒷면과 반쪽 옛날에 제자가 스승께 여쭸다"스승님, 오늘 저잣거리에 갔었는데 수많은 인파가 제 마음을 혼탁하게 했습니다. 제 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를 의식하고 쳐다보는 것 같아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착각이란 것을 알지만... 어떻게 제 마음을 다스려야 좋겠습니까?" 스승이 잠깐 명상을 하고 제자에게 말했다. "너와 눈을 마주치는 행인들의 앞면이 실제로는 뒷면이라고 생각하거라 즉, 그들은 뒷면으로 뒤로 걷고 있다고 암시해보거라." 순간 제자의 눈빛이 번뜩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덤으로 제게 가르침도 주셨습니다. 무릇 세상 사람들은 내면적으로 뒤로 걷고 있다는 것를 우회적으로 깨우쳐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스승은 먼 산을 묵묵히 바라보더니 제자에게 말했다. "너는 메아리만 듣고 나무와 바위.. 2009. 5. 30. 2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