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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2009년 개인적으로 뽑은 최고 영화 - 렛미인, 슬럼독 밀리어네어, 디스트릭트 9

by 김곧글 Kim Godgul 2009. 11. 2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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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영화를 많이 봤다고 자부하지는 못 하지만, 좋았던 영화를 손꼽는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적게 보지는 않았다. 영화는 정서적인 측면이 강해서 오랫동안 품고 살아온 감정과 취향에 따라 정말 좋았던 영화를 선택하는 개인차가 심할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각양각색의 지역과 문화를 아우르는 인간들의 보편적인 감정이 있기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실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는 존재한다. 

단순히 영화 예술적 기술적 관점으로 훌륭한 영화를 선택하지는 않았다. 겉으로 쉽게 표현되는 감정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을 어루만져준 영화들이었다. '렛미인(Let Me In)',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 '디스트릭트 9(District 9)'이 2009년에 내가 뽑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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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 미 인 (Let the right one in)

하얀 눈과 사랑은 우표와 러브레터다. 눈을 배경으로 사랑 이야기가 전개되는 영화와 소설을 일일히 열거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렛미인'에서도 눈과 사랑이 함께 내리는데, 사랑은 흔히 감상해 본 사랑이 아니다. 그래서 더 특별한 감정을 느꼈었던 것 같다. 사실적인 공포 영화적 요소도 섬득했고, 눈발이 바람을 타고 하강하는 것 같은 시적인 영상미도 아련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겉으로 보이는 이야기만으로도 아름답게 빛나는 얼음궁전이었지만, 의도했건 안 했건 그것이 가리킨다고 볼 수 있는 은유가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 은유에는 일부 남자들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겪을 수도 있는 씁쓸한 이면들이 담겨 있다. 쉽게 말해서 학교, 군대, 직장 또는 업종의 어두운 측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뿌연 매연일 뿐이고 캐릭터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

이전에 올렸던 글 : 렛 미 인 (2008) - 경계를 넘는 서정적인 러브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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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Slumdog Millionaire)

이 영화처럼 여러 모로 만족스러웠던 영화는 없었다. 특별하지 않고 소박한 영웅의 삶의 여정과 운명(신)의 배려, 지루하지 않은 현대적인 영상미,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성, 지나치게 감상에 빠지지 않으면서 총체적으로 감동을 전달하는 연출력, 그리고 남녀노소에게 다가갈 수 있는 상업성 있는 컨셉. 영화가 꼭 이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컨셉의 영화가 오랜 세월 동안 명작으로 기억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올해 국내에서 인기를 휩쓴 '해운대'와 '국가대표'도 이런 컨셉의 영화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단지 개인적인 감상으로 판단하건데, 이들 대박친 국내 영화는 영상미적으로 기술적으로 뛰어났지만, 인간과 문명에 대한 조망,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은유 또는 생각해볼 거리)가 거의 없었다. 단지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꽤 좋았고 감동도 요긴하게 들어있었지만 그 감동은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은 아니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감동은 훨씬 깊었고 여운은 멀리 메아리쳤다.

개인적인 생각에 이 영화의 핵심 줄기는 주인공 '자말'의 인생 역정인데 그것만을 늘어놓으면 좋은 영화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보통 사람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데는 버거웠을 것이다. 퀴즈쇼는 그 아쉬움을 요긴하게 만회하는 핵심 가지였다. 즉, 퀴즈쇼가 중요한 게 아닌데 영화 홍보 등을 보면 마치 '한탕을 노리고 라스베가스로 향한 젊은이의 인생 성찰 영화'를 연상시키는 점이 아쉬었었다. '한탕'과는 무관한 영화였다. 

여담이지만 이 영화의 예상치 못 했던 옥의 티는 크레딧에서 출연했던 배우들이 여러 명 나와서 춤을 추는 장면이었다. 감동의 여운이 다 소화되기도 전에 배우들이 뛰쳐나와 "이건 그저 영화속의 허구였을 뿐이야!'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뮤지컬적인 느낌을 내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뮤지컬 영화도 아닌데), 인도 문화에서는 그런 엔딩을 좋게 보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냥 텍스트만으로 된 크레딧이 올라가거나, 배우들의 인상적인 장면을 스틸에 담아 오버랩 시켜주는 정도가 훨씬 좋았을 것 같다.

이전에 올렸던 글 : 천재감독, 명작 들고 하산 -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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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 9 (District 9)

다큐적인 영상미를 세련되게 영화적으로 잘 표현했다. 내용도 흔히 봤던 패턴이 아니고 참신하고 신선했다. 현대 문명을 은유하는 메시지도 담겨있다. 평범한 주인공이 진실된 영웅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도 좋았고, 새우 외계인에게 감정이입되도록 세밀한 설정도 잘 했다. '디스트릭트 9'은 탄성이 절로 나오는 참신한 SF 액션 영화였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장점은 세련된 오락성이다. 어떤 영화제에 출품될 정도로 특별한 영상미도 없고 문학적인 내용이 들어있지는 않다. 그러나 흔한 SF 액션 영화에 따분했던 관객에게 청량음료처럼 시원한 약수였다.

미국에서는 흥행에 성공할 정도였지만 국내에서는 그렇게 흥행하지는 못한 것 같다. 너무 참신했거나 문화적인 차이 때문일 것이다. 국내 관객은 트랜스포머처럼 좀더 자극적으로 강렬한 볼거리를 원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CG 스펙터클은 약했지만 내용과 변화하는 캐릭터 위주로 관람하면 훨씬 더 훌륭했고 감동도 있으며 짜릿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작년에는 '다크 나이트'가 있었다면 올해는 '디스트릭트 9'이 있다. 짜릿한 재미의 바톤을 이어받은 것이다. 물론 12월에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와 일본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에반게리온:파'가 상영된다고 하지만 아직 못 봤으니 비교할 수 없다.

이전에 올렸던 글 : 디스트릭트 9 - 신선하고 심플하고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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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감동적으로 관람했던 영화는 '더 리더', '레슬러', '예언자',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이였다. 감동의 정도만을 따진다면 위에 언급한 영화의 것과 형태는 다르지만 정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이 영화들은 대중성과 오락성이 떨어질 뿐이다. 그래서 덜 훌륭한 영화일 수는 없다. 단지, 좀더 폭넓은 인간이 공감하도록 만든 영화를 선택했던 것 뿐이다. 대중성과 오락성을 제외하면 위에 언급한 영화와 대등한 영화였다.

비슷한 관점에서의 국내 영화로는 '박쥐'와 '마더'가 있다. 영화 기술적인 완성도와 예술성은 자타가 공인할 만큼 뛰어났다. 그러나 대중성과 오락성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떨어졌다. 또는 겨냥한 방향이 많이 빗나갔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영화를 근사하게 참 잘 만들었다!"라는 것 외에 감동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인 만큼 몇 백만 이상 관람했으니 그렇게 실패작이라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너무 크게 기대했기 때문이지 영화를 파헤치듯이 연구하듯이 관람하는 관객에게는 매우 유익한 영화였을 것이다.

이전에 올렸던 글:

2009년 11월 30일 김곧글

PS: 관객수를 계산기에 뚜드려보는 것과 별개로 좋은 작품을 만드는 감독, 배우, 스텝은 인류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매우 많이 훌륭하게. 그리고 그것은 신과 인간을 찬양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예술도 그렇다.